송시열·송준길 미공개 서예작품 대거 공개 [중앙일보]
두 글자 높이 164㎝ … 보기 드문 대작 포함
서울서예박물관서 우암 탄신 400주년 기념전
서울서예박물관서 우암 탄신 400주년 기념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17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정치가다. 성리학을 후기 조선 왕조의 주도이념으로 확립한 그는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론을 주도했고, 국상(國喪)때 입을 의복 논쟁을 통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천한 인물이다. 이 모든 일을 함께 해낸 것이 우암의 아저씨뻘 되는 동춘당(東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이다. 하지만 우암과 한살 연상의 동춘당이 당대에 ‘양송체(兩宋體)’로 이름을 날린 대 서예가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양송체는 조선 석봉체를 토대로 안진경(顔眞卿)과 주자의 필법을 녹여낸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직필’(直筆)‘은 서예가로서의 두 사람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면서 이들과 연관된 인물들의 서예와 회화까지 합쳐 100여 점을 마련했다. 지난해가 동춘당, 올해가 우암의 탄신 400주년인 점에 맞춰 기획한 특별전이다.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양송체로 불리는 동춘당과 우암의 글씨를 통해 도학자(道學者)에게 글씨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려는 전시”라며 “70% 이상이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이라고 소개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은진 송씨 문중에서 개인들이 간직해오던 비장품들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대거 내놓았다”면서 “특히 대전시 송촌동 선비마을에 있는 동춘당 고택의 선비박물관 소장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동춘당은 초상화를 전혀 남기지 않았지만 우암의 초상화는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데 이번 전시에 거의 망라했다. 특히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대자서(大字書·큰 글씨 작품)들이 눈에 띈다. 우암이 제자 유명뢰에서 써 준 ‘각고(刻苦)’ 두 글자는 높이가 164 ㎝에 달하는 큰 족자다. 유명뢰와 권상하, 정호 등 세 사람이 쓴 발문(붙이는 글)이 좌우와 아래에 함께 실려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빗자루같이 커다란 붓이 당시에 있었다”면서 “이런 붓은 말꼬리 털을 재료로 했고 대롱은 두 손으로 쥐어야 할 만큼 두꺼웠다”고 덧붙였다.
이형부(1791~?)의 화양구곡도첩(華陽九曲圖帖)도 처음 공개됐다. 화양구곡은 우암이 자신이 은거하던 충북 괴산군 화양동 계곡에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따 이름을 하나하나 붙였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도첩은 경치로 유명한 화동구곡이 그림으로 그려진 유일본이다. 담박하면서도 혁신적인 서양화풍을 나타내 회화사적 맥락에서도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사람의 양송체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새로 밝혀졌다. 생전에 모습이 ‘빙옥같다’는 표현을 들었던 동춘당은 원만하고 부드러운 필획을 구사했다. 하지만 ‘태산같다’는 우암은 힘있고 거친 갈필이 특징인 것으로 확인됐다. 글의 내용은 인격수양이나 도학공부와 직결돼 있다는 게 공통점. “오직 곧을 직 한글자 뿐”이라는 우암의 작품 ‘惟一直字’는 주자가 임종 무렵 문인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겼다. 글씨는 마음의 표현이자 덕성의 표출이라는 관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설가 김훈(22일),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2008년 1월 12일), 우암 후손인 송준호 연세대 명예교수(1월 19일), 예송논쟁 전공자인 오석원 성균관대 교수(2월 2일)의 특강도 마련돼 있다. 입장료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 02-580-1284 조현욱 기자 |